Son Min-ji
  • Home
  • Work
    • [Green]
    • [Embroidery]
    • [Dead leaves]
    • [Dry flower]
    • [Drawing]
    • [Public art]
    • [Collaboration]
  • Text
  • CV
  • Contact
  • INSTAGRAM
  • Home
  • Work
    • [Green]
    • [Embroidery]
    • [Dead leaves]
    • [Dry flower]
    • [Drawing]
    • [Public art]
    • [Collaboration]
  • Text
  • CV
  • Contact
  • INSTAGRAM
Searching for Green

 
길음 뉴타운과 월곡 뉴타운 사이에 위치한 사다리꼴 모양의 하월곡동 88번지. 소위 ‘미아리 텍사스’라 불리는 이 지역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삶이 공존한다. 절반은 오랫동안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원주민이고, 삼할은 저렴한 집값을 찾아 몰려온 이방인 그리고 나머지는 성매매 업소를 비롯해 이곳에 일터가 있는 사람들이다. 무정주 전시 이후 2년 만에 다시 찾은 하월곡동 88번지의 골목골목을 걸어 다녔다. 따뜻한 봄날의 거리는 길가에 널브러진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했고 잘 정돈되어 있었으며, 가끔 한 두 사람 지나다닐 정도로 조용했다. 특별하게 다가온 점은 곳곳에 화분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냥 방치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화분이었다. 2년 전 겨울의 황량함이 이곳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었던지라 예상치 못한 풍경에 살짝 당황했다. 나는 어느새 식물을 찾아다니며 좁은 골목을 누비고 있었다. 낡고 오래된 주택의 대문 앞과 계단, 옥상, 심지어 지붕 위에도 초록이 가득했다. 골목마다 식물을 보살피는 집 주인의 정성이 느껴졌고, 이곳도 미아리 텍사스이기 전에 사람 사는 곳임을 새삼 생각했다.
 
올봄, 작업실에 작은 정원을 만들었다. 나의 공간으로 식물을 데려와 지켜보고 보살피며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을 보는 일은 크고 작은 기쁨이었다. 간혹 나의 미숙함으로 떠나보낸 아이들도 있었지만, 살아있는 생명을 대하는 일은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미아리 골목을 걸으며 이처럼 식물을 가꾸는 일은 곧 자기의 삶을 가꾸는 일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누군가는 이를 조용하고도 적극적인 삶이라 말했다. 이것이 하월곡동 88번지에 대한 새로운 감정이었다. 나는 두 번, 세 번, 네 번 이 골목을 걸으며 숨어있는 초록들을 찾고 또 찾았다. 그것이 하월곡동 88번지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인 것 마냥….
 
미아리 텍사스에는 꽤 유명한 약사 이모님이 계시다. 일찍이 「미아리 서신」으로 먼저 접했던 이모님의 글에는 이곳 사람들과 지역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묻어있다. 건강한 약국을 처음 방문한 그날, 이모님은 약국 앞에 손수 만든 작은 정원을 돌보고 계셨다. 약국에서 이모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이 지역에 오동나무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10년만 되어도 크게 자라기 때문에 딸이 시집갈 때 장롱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란다. 오동나무는 땅이 기름지고 물이 잘 빠지는 곳에서 생육한다는데, 이곳에 오동나무가 많은 걸 보면 미아리 텍사스 터가 꽤 좋은 땅인가 보다.
 
그 중 차들이 쌩쌩 달리는 내부순환도로와 미아리 텍사스를 가르는 펜스 사이에 심겨진 오동나무는 그 생김새가 기이하다. 뿌리는 미아리 텍사스 펜스 바깥에 심겨져 있는데, 몸통은 미아리 텍사스를 향하여 허리를 숙인 듯 구부러져 가지를 무성히 뻗고 있다. 바로 옆 ‘미성년자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이 우습게 오동나무는 보란 듯이 그곳으로 넘어와 있다. 이모님의 말에 의하면 1970년대에 내부순환도로는 맑은 정릉천이 흐르던 곳이었다고 한다. 오동나무는 그때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도로와 고가가 생기고 가지가 뻗을 공간을 상실하면서 오동나무는 얼굴을 다른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곳이 미아리 텍사스라는 별칭을 얻은 이래, 펜스가 세워지고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받는 동네가 되었어도 오동나무는 묵묵히 그 자리에서 지켜보아왔다. 마치 미아리 텍사스를 지키는 수호신 나무처럼 말이다. 하지만 수호신의 가호가 언제까지일까? 언젠가는 이곳도 재개발되어 남아있는 모든 것들은 차가운 시멘트 아래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텐데. 골목마다 스며있는 시간과 추억, 이야기, 관계, 만남, 그리고 봄날의 초록도….
 
나는 하월곡동 88번지의 좁은 골목을 걸으며 초록을 찾아다니고 있다. 식물의 이름이 무언지, 생김새가 어떠한지, 어디에 심겨 있는지, 주인이 누구인지, 어떤 특별한 사연을 갖고 있는지 등을 기록하며, 짧게나마 미아리 텍사스의 현재를 그리고 그 안에 알알이 박힌 삶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 손민지 / 2016 -

ⓒ 2015. sonminji all rights reserved.